2020년 7월 30일 목요일

쿠르드족 난민 소녀가 하버드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되다 -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교육의 힘

오늘은 1991년 생인 뉴질랜드 아가씨 한 분 소개해드릴게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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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즈 가르디(Rez Gardi)라는 분입니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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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쁘게 생기셨죠? ^^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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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뭔가 백인은 아니에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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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적은 뉴질랜드이지만, 실제로는 쿠르드족 출신이에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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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고로 쿠르드족은 인구가 3~4천만명 정도 되는 꽤 규모가 큰 민족인데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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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라가 없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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쿠르드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한 번 아래 링크를 참고해보세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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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 쿠르드족 비운의 역사는 눈물 없이 보기가 힘들답니다. ㅜ.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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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무튼 레즈 가르디도 이런 슬픈 쿠르드족 출신 아기로 태어났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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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도 파키스탄의 난민 캠프에서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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엄마는 이라크 지역에 머물던 쿠르드족 출신이었는데, 사담 후세인의 화학탄 공격으로 가족들을 잃고,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쳐서 이란으로 가게 되었구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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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빠는 터키 지역에 쿠르드족 출신이었는데, 터키 정부가 너무 박해를 하니까 그것을 피해서 역시 이라크로 도망갔다가 엄마를 만나고, 같이 이란으로 오게 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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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란에서 이 엄마, 아빠는 쿠르드족을 위한 인권운동을 하다가 또 박해를 받고서, 파키스탄 난민 캠프까지 흘러들게 되는데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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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이 난민 캠프에서 레즈 가르디가 태어난거죠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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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어린시절을 난민캠프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받고,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, 온갖 고생을 하면서 살았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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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은 난민텐트 하나에 4~5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거주했다니까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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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도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파키스탄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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로컬 학생들에게는 난민이라고 그렇게 손가락질을 받았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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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다가 당연히 파키스탄 선생님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는데, 그럼 못알아듣는다고 맞고, 또 말을 모르니까 공부를 못한다고 맞고... 선생님에게 무지하게 체벌을 받았었다고 하네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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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던 어느날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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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 알라신이 도왔는지, 유엔난민기구(UNHCR)의 도움으로 난민 승인을 받고서 7살이 되던 1998년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오게 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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뉴질랜드에 도착해서는 그렇게 많은 푸른 나무들을 난생 처음 눈으로 봤다고 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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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어나서 계속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의 사막에서 생활을 했으니까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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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 지옥에서 천국으로의 경험이었음이 틀림이 없었지만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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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럼에도 불구하고, 바로 2000년 들어서면서 미국에서 9/11 사태가 터졌고, 뉴질랜드에서도 무슬림들에 대한 반감들이 생기기 시작했고,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을까봐 쿠르드족 출신임을 숨기면서 학교에 다녔다고 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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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식한(?) 보통의 뉴질랜드인들은 쿠르드족, 파키스탄, 아프가니스탄, 알카에다는 물론 시크교도들도 구분을 하지 못하니까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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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즈 가르디가 처음 뉴질랜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깜짝 놀란 것이 있었데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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뉴질랜드 학교 친구들은 정말 다 천재인줄 알았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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왜냐하면,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뭐를 물어보면 다들 겁도 없이 손들고 척척 대답을 하는데, 단 한 번도 선생님이 아이들을 때리지 않더래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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파키스탄 기준으로는 그게 아이들이 모두 다 정답을 말했다는 것이거든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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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는 파키스탄에 있을 때 맨날 대답 제대로 못해서 선생님에게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데, 뉴질랜드 아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대답들을 잘하는지..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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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자기도 그 아이들을 따라가려고 열심히 공부를 했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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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나중에 깨달은거죠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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뉴질랜드 아이들은 모두 다 엉터리 답을 열심히 자신있게 수업시간에 발표하고 있었다는 것을요. ㅋ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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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틀린 답이라도 자신감있게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잘 발표할 수 있도록 키워주는 것이 바로 뉴질랜드식, 선진국 교육 방법이라는 것도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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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에 자기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었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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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다가, 난민 출신이니 무슨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개인 과외 같은 것을 받거나 혹은 비싼 사립학교 다녔겠어요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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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냥 오클랜드에서도 좀 변두리의 그저 그런 공립 고등학교, 즉 백인 학생들은 50%도 안되고, 마오리, 사모아, 통가 출신 학생들이 많았던 그런 학교에서 공부를 했지만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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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름 뉴질랜드에서 가장 명문으로 꼽히는 오클랜드 대학교에 입학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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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도 법학과로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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통상 호주, 뉴질랜드의 법학과는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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졸업만하면 사실상 변호사 자격이 거의 보장이 된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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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법학학사(LLB) 그것도 Honour Degree 에 범죄학 전공 인문학사까지, 복수학위로 졸업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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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시에 뉴질랜드에서 난리가 났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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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들이 사실 울며 겨자먹기(?)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쿠르드족 난민 소녀가 나름 자기 나라 최고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으니까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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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2017년에는 '올해의 젊은 뉴질랜드인'(Young New Zealander of the Year)이라는 상을 수상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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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여기서 끝이냐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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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하버드대학교 로스쿨까지 진학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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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기서 법학석사 (LLM)로 졸업하고,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하게 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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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즈 가르디는 역사상 최초의 쿠르드족 출신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졸업생이 된거에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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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버드대학교에서 무슨 학장 상도 받고 무슨 펠로우쉽도 받고 난리가 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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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국제 인권 변호사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구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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뉴질랜드 정부를 대표해서 수많은 UN 및 국제 인권 단체들의 각종 국제회의, 컨퍼런스 등에 참여하고, 심지어 ISIS 전쟁범죄자들 기소하는데 기여하고, 매우 다양한 글로벌 활동들을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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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해 나이 29세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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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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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레즈 가르디가 만약 그냥 파키스탄에 남아서 계속 교육받고 생활을 했다면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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혹은 난민 승인은 받았지만, 뉴질랜드가 아니라 한국 혹은 일본 같은 나라에 가서 정착을 하고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 어떤 커리어를 가지고 있을까요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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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것이 바로 복지 선진국 교육의 힘이랍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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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면,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교육의 힘이기도 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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뉴질랜드 변호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하여, 수월하게(?) 미국 변호사까지 되고, 각종 국제기구, 인권단체들에서 아무런 언어적 제약이 없이 자기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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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렇게 인구 5백만도 안되고, 사실 1인당 국민소득도 주요 선진국들 중에서는 약간 낮은 편인 작은 나라 뉴질랜드의 힘은 바로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영국식 교육 및 사회제도에서 나오는 것이랍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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뉴질랜드 법대나 하버드 법대 모두 헌법 개론 첫시간에 영국의 권리장전부터 배운다고 보면 되요 ㅋ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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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, 또 영어 한마디 못하던 난민 출신 소녀를 오로지 공교육만으로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출신 국제 인권 변호사가 될 수도 있도록 해주는 교육복지로서의 '기회'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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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도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고민 중이신 분들은 아이들 어떻게 문제풀이 반복숙달 혹은 학원 뺑뺑이 시킬지만 걱정하지 마시고, 또 다른 길들도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. ^^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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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Sammy의 이민자료실' 운영자 Sammy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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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.S.: 레즈 가르디의 영어 발음을 보면 그냥 뉴질랜드 액센트를 가지고 있는 원어민입니다. 중동쪽 액센트를 눈치채기가 거의 어려워요. 만 7살 때부터 뉴질랜드에서 초중고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렇답니다. 만 12세 이전에 그 나라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모국어가 될 수 있어요. 어떤 언어를 모국어 레벨로 하느냐 그냥 외국어로서 겨우 의사소통 정도만 하느냐는 커리어적으로 큰 차이가 있답니다. 꼭 참고들 해보세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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